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주중 영국 대사관 점령 사건 (문단 편집) === 베이징의 상황 === [[파일:문혁시기영국대사관.jpg]] 홍위병들이 붙힌 대자보로 둘러쌓인 영국 대사관의 전경 혁명 국제주의 선포 이후, 베이징의 외교관들에겐 힘든 나날이 찾아왔다. 홍위병들은 공산주의, 자본주의를 가리지 않고 모든 나라의 외교관들을 반동으로 몰아 공격했다. 소련 대사관이 수정주의자 소굴로 몰려 170명의 소련 외교관들이 포위당했으며 홍위병들은 이들에게 음식을 전달하려는 다른 나라 외교관들을 구타하고 모욕했다. 소련 대사관 앞에서는 홍위병들이 브레즈네프를 비롯한 소련 지도자들의 인형을 만들어 화형식을 거행했고 소련 대사관 직원들은 베이징 시 당국이 물을 차단할 가능성을 염려하여 수영장에 물을 채웠다. 또한 인도네시아 대사관 역시 공격 대상이 되었다. 1967년 4월, 자카르타에 있는 주 인도네시아 중국 대사관이 습격을 당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때 영웅적인 행동으로 활약을 하여 칭찬을 받은 야오덩산이란 젊은 외교관은 조리돌림당해 무력화된 천이를 대신하여 사실상 외교부장직을 수행하고 있었다. 야오덩산은 천이로부터 정권을 회수하기 위해 탈권을 부추겼고 그 과정에서 인도네시아 대사관 역시 홍위병들에게 포위되어 출입문이 완전히 폐쇄되었다. 이어 몽골 대사관과 케냐 대사관도 홍위병의 공격을 받았다. 케냐 대사관 앞에서는 홍위병들이 얼굴을 까맣게 칠한 밀짚인형의 목을 매달아 몇달이나 전시하며 케냐 대사관 직원들을 위협했다. 이들의 배후에는 문혁소조에서도 가장 급진적인 왕리와 [[관펑]]이 있었다. 이들의 지시로 홍위병들은 <권력 탈취 지휘부>를 조직하여 외국 대사관을 공격함은 물론 외교부 건물을 점령하여 외교 문서들을 마구 불사르고 [[지펑페이]], [[차오관화]]를 비롯한 고급 외교관들을 억류하였으며[* 이들은 차관급 각료들이었다.] 저우언라이를 납치하기 위해 저우언라이의 사무실을 이틀 반이나 점령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